나름 정신 없이 일요일을 보냈다. 어젯밤에 침대에 누워 잠이 잘 안 왔다. 그래서 내일 어떤 하루를 보낼지 생각해봤다. 계획한 일은 포실이(햄스터) 집 청소하고 베딩, 모래 갈아주기,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영화보기, 여권과 이력서 사진 찍기였다.
평상 시의 일요일은 그저 집에서 퍼져있는 모습이었다. 나는 나의 이런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렇게 보내는 일요일이 아쉬웠다. 그렇지만, 일요일이면 저녁을 먹고, 회사 인근 자취방으로 한 시간 반 가량을 운전해야하고 월요일이면 출근이기 때문에 나름 계산하여, 체력을 비축한 것이다.
요즘 건강을 위해서 매일 하고 있는 운동이 있고 오늘도 역시 실천했다. 만보걷기, 새천년건강체조, 그리고 팔굽혀펴기다. 오늘도 어김없이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간다. 날이 다르게 바람이 차가워진다. 겨울이 다가오나보다. 나무에 달린 은행잎과 떨어진 낙엽들을 볼 때면 마음마저 시려워진다. 백화점에 가보면 어느새 크리스마스 장식과 캐롤이 울려퍼진다. 겨울이 온 것을 오감으로 느낀다.
아무튼 다시 돌아와서 계획한 것 중에서 영화'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보지 않았다. 영화 제목이 끌렸다. 다음주 금요일에 오전근무만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엄마랑 보기로 했다. (유연근무 좋다... 아직 첫 금요일 오전 근무 후 퇴근을 하기도 전인데도 생각만으로 기쁘다.) 곧, 만으로 서른이 될 나에게 스스로에게 하고픈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보지 않은 이유는 오늘보다 다음 주에 보는 것이 여유로워 좋을 것 같았다. 계획적인 삶을 살기로 결심한 나이다. 나의 엠비티아이 마지막 단어는 P이다 계획적(J)이기보다 즉흥적(P)이라는 표현이다. 나는 엠비티아이에 많이 흥미를 가졌었는데, 이제는 재미로만 보려고 한다. '나는 P니까 P처럼 행동해.' 라는 자기합리화를 하고 싶지 않다. 따라서 오늘 즉시 다음주 금요일 티켓을 예매했다. 미루지 않고 생각난 즉시 생각하고 행동하는 습관을 갖기로 스스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JUST DO IT. 그냥 하는거다. 옛날 럭키가이, 노홍철이 외치던 것처럼 '가는거야!'
오늘은 조금 일찍 일어났다. 7시도 안 되어서 눈이 떠졌다. 주말에도 7시에 일어나기를 목표해서 알람을 설정했는데 보다 먼저 눈이 떠졌다. 반쯤 감긴 눈으로 거실에서 엄마, 아빠가 대화하는 인기척에 쇼파로 걸어가 앉아 눈을 감고 앉아있는다. 포실이(햄스터)를 키우고 있다. 지난 5월부터니 6개월 정도 되었다. 보통 햄스터의 수명은 2년 정도니까 인생의 1/4 쯤 왔으니 포실이는 나처럼 2030 청년이다. 포실이는 내 친구다. 홀로 타지에 나와 자취하는 내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친구다. 지난 추석 연휴는 개천절과 연결되어 길었다. 그래서 그 때부터 포실이는 서울 집에 살게 되었다. 다시 방으로 데려가고 싶은 욕심이 있지만, 그러지 않을 것이다. 2년 사는 햄스터가 2시간을 차에 타는 것은 100년 사는 사람이 100시간 차를 타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래서 포실이는 주말마다 보기로 결심했고 앞으로도 계속 서울에 있을 것이다.
오랜만에 포실이 집 대청소를 했다. 베딩(톱밥)을 새 것으로 갈아주었다.(쓰던 베딩을 조금은 섞어줬다. 햄스터는 자신의 냄새가 나지 않는 낯선 환경에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리빙박스, 각종 은신처, 모래통, 쳇바퀴까지 세척했다. 소동물(작은 동물)이지만, 귀한 생명이다. 그만큼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햄스터집 청소는 꽤 힘든 일이지만, 하고나면 소소한 성취감 또는 보람을 느낀다.
그리고, 여권사진, 이력서사진을 찍었다. 이것도 오랜 숙원이었는데 오늘 날 잡고 모든 숙원 사업을 처리하기로 결심했다. 집 근처에 사진관을 자주 지나쳤던 기억이 나서 전화를 해봤지만, 일요일인지라 오늘 사진을 찍을 수 없다고 하더라. 오늘 찍지 않으면 다음주 금요일 이후에 찍을 수 있어서 서두르고 싶었다. 지하철 역 근처에 한 사진관을 카카오맵을 통해 알아봤고 후기가 별로 없는데 나쁘지 않아 전화해봤다. 스튜디오가 협소하다기에 개의치 않았는데 직접 가보니 조금 많이 당황했다. 그래도 속는 셈치고 찍어보리라...
사진이 2시간 조금 더 걸려서 나왔다는 문자메시지에 다시 한 번 방문해본다. 자전거(따릉이)를 타고 간다. 오늘 너무 많이 걸었다. 다리가 아파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따릉이 근본 안장은 바로 이것. 나는 이렇게 까만 프레임의 까만 고정대가 달린 따릉이를 좋아한다. 이게 품질이 좋기 때문이다. 중간에 안장의 높이가 살살 내려가 주저앉은 적이 없는 튼튼한 안장이다.
손잡이의 느낌이 새롭다. 그립감이 제법 좋다. 손잡이 부속도 새로 바뀐것인가? 이 손잡이 상당히 마음에 든다. 따릉이의 품질이 점점 향상되어가는 것 같아 소비자로써 기분이 좋다.
사진을 받아보고 많이 당황했다. 아놔...ㅋㅋㅋㅋㅋㅋ 그냥 쓸까?도 싶다가 마음이 굉장히 서운했다. 내가 못생긴건가? 살 찐 탓인가? 최근에 나는 많이 증량됐다가, 운동과 정량먹기로 조금 감량했다. 그런데 아직 갈 길이 먼 것인가? 새로 산 안경이 문제인가? 엄마아빠에게도 보여드렸는데 너무 별로라고 하신다. 사진관의 문제라고 생각하자. 일주일 더 감량하고 멋있어져서 다시 찍자 다음주에... 다른 스튜디오에서 말이다. 스튜디오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꽤 피곤한 일요일이었는데, 그래도 체력이 괜찮다면 이렇게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매주 일요일을 이렇게 보내기엔 조금 무리가 있긴 할 것 같다. 그래도 알차게 보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