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를 연주하고픈 욕구가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나는 콩쿠르 대회에 나가기도 했고, 체르니40까지 진도를 뺐었다. 아주 어린 시절 난 제법 피아노를 잘 친다고 생각했었다. 콩쿠르 대회를 준비하면서 그저 대회를 위한 시간을 보냈다. 결국 피아노에 대한 흥미를 잃어, 그만 두게되었다. 그만 두더라도 언제든 칠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피아노를 지속적으로 연주하지 않으면 잊는다는 것은 그 당시에 어린 내가 이해하기 어려웠다. 결국 나는 지금 피아노를 연주할 줄 모른다.
나는 이틀 전 13일 월요일에 다짜고짜 피아노 학원에 연락하고, 퇴근하자마자 방문했다. 성인이 되어 내 의지로 학원에 등록한 것은 토익학원을 제외하고는 이곳이 처음이다. 그렇지만, 토익은 내게 필요하긴 했지만, 본질적으로 기업이 요구하기 때문에 남에 의해서 다닌 곳이다. 그러나, 피아노는 다르다. 어린 시절처럼 다시 연주하고싶은 그런 욕구가 있다. 특히 동아리 활동할 때, 피아노를 잘 치는 반주자들을 보고는 그 욕구가 더 커졌다. 최근에는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이게 큰 동기가 되었다. 어쨌거나, 오랜 숙원사업이었단 말이다. 그래서 토익 학원 등록과 비슷한 듯했지만 피아노 학원 등록은 낯설고 새로웠다.
피아노를 배우는 이유와 나의 목표 등을 원장님이 주신 설문지(?)에 작성하고 얘기를 나눴다. 수업 시간과 연습 시간, 학원 이용에 대한 안내 및 주의사항을 듣고, 원하는 레슨 시간을 조율하였다. 그리고, 레슨비를 계좌이체했다. 달에 28만원이다. 달에 8번으로 나누면 하루에 35,000원 꼴이다. 큰 돈이 나가서 조금 부담이긴 하지만, 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여 그만큼 열심히 배우고 연습하리라 다짐했다.
먼저, 내가 피아노를 전혀 칠 줄 모른다고 하니, '성인바이엘'을 주셨다. 바이엘 이라니 정말 오랜만에 보는 책 이름이다. 바이엘, 피아노소곡집, 하농, 체르니, 브루크뮐러 등 그 당시 피아노 손가방에 들고 다니던 책들이 생각난다. 아무튼 성인바이엘을 한 장씩 넘기며 계이름대로 쳐봤다. 도레미파솔, 왼손 오른손 1,2,3,4,5번 손가락을 자유롭게 쓰는지 정도의 수준이었다. 아무리 내가 피아노 연주를 다 잊었다지만, 이 정도는 충분히 해낼 수 있다. 내가 바이엘을 충분히 치는 모습을 보고는 원장님이 바이엘 책을 다시 가져가시면서 잘한다고 했다. 나는 웃음이 나왔다. 이거는 누구라도 할 수 있는거 아닌가요...?
그리고 내가 목표한 곡 악보를 프린트해오셨다. 유리상자가 원곡인데, 박신양 버전으로 하고 싶다 했다. 그리고 쉬운 버전이 있고 어려운 버전이 있다고 했다. 나는 어려운 것을 선택했다. 독학도 아니고 배우는 것인데, 제대로 배우고 싶었다. 원장님은 프린트한 악보를 보시고선 노래를 한 번 틀어보라신다. 유튜브를 틀어 박신양이 피아노를 치며 불렀던 노래를 틀어본다. '어이 거기 핑크, 거긴 좀 앉지'라는 말에 원장님과 빵 터졌다. 원장님은 청음하면서 예리한 눈으로 악보를 쳐다본다. 처음 전주 두 마디만 다르고, 그 뒤에는 똑같다고 하셨다. 그 정도는 문제가 될 것이 없다. 악보를 받아보았다. 파,도,솔에 #이 붙어있다. 바이엘 책 좀 쳤다가 바로 이 악보라니 많이 당황스럽다. 동아리방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던 친구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그 친구는 초견(악보를 처음 보더라도 바로 연주할 수 있음)이 가능한 실력이다. 아무튼 손가락이 최대한 덜 움직일 수 있게 원장님이 먼저 쳐보시고는 손가락 번호를 일일이 다 정해서 악보에 써주셨다. 그리고, 손위치 변경이 거의 없는 부분에 표시도 해주셨다. 어린 시절 피아노 레슨을 받던 기억이 난다. 이 학원을 바로 선택한 이유는 과거 다녔던 학원과 이름이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곳 학원 이름이 앞에 두 글자 더 있지만, 친숙함이 느껴졌다. 어쨌거나 힘들게 오른손 연주를 긴 시간이 걸려 마쳤다. 손가락을 동시에 네 개를 쓴 적은 없었고 샾도 세 개나 붙어서인지 정신 없었다. 어린 시절에도 가요 반주를 쳐보지 않았기에 더 낯설고 쉽지 않았다. 어린 시절에도 새로운 곡은 쉽게 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어쩌면 그 때와 같은 상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시간의 레슨이 끝나고 개인 연습을 두시간 가량 더 했다. 하루 빨리 완성하고, 능숙해지다 못해 악보를 통으로 외워 노래를 부르면서 피아노까지 칠 정도의 완성도를 목표로 삼았기 때문이다. 내가 큰 욕심을 가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끝내 이루리라. 나는 피아노가 없다. 대신 회사 영상실 무대에 피아노가 있다. 점심시간을 최대한 이용하여 연습할 것이다. 화이팅!!!